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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충주 가금면 ‘한국한글박물관’을 찾아서(2)
작성자 간호윤 등록일 2011-02-14 조회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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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뒤 남한강2.

 

부천 발 9시 30분 차는 꼭 12시에 충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김 관장은 저만치서 웃는 얼굴로 다가온다못 본 지 2년여 쯤 되었는데 그 모습 그대로다.

 

간 선생얼굴이 좋아졌어-”

 

인사치레라 하더라도 정답기 그지없다사실 언제부터인지 거울을 볼 때면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다내 모습이 영 낯설다여기에 공자께서는 배움을 어찌나 좋아하셨는지 늙었는지도 몰랐다라고 하신 생각을 하면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내가 더욱 속상하다김 관장은 수고스럽게도 내가 버스로 간다하여 우정 충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나를 데리러 나온 것이다인사도 고맙고배려도 고맙다.

 

자네도 얼굴이 그대로일세.”

 

김 관장은 원래 동안이라 그런지 정말 전에 본 그대로다김 관장은 일찍이 우리 것에 관심을 갖은 눈 밝고 심지 궂고 인심 좋은 사내다천안에서 미도박물관을 운영하였고그 결과가 충주에 세운 한국한글박물관이다그러니 그 세월만도 삼십여 년이다그 내공이야 공부를 업으로 삼는 이들도 넘보기 어렵다특히 그는 한글문헌에 관심이 깊어 한글박물관을 이곳에 차린 것이다나하고는 이미 10여년의 벗이요내 저서 선현유음마두영전주생전위생전의 자료와 해석이 김 관장의 배려에서 햇빛을 본 책들이다.

 

김 관장은 나보다 먼저 한국한글박물관을 찾은 분과 동행이었다자그마한 키에 살가운 어투여기에 옛 것에 대한 관심으로 김 관장을 찾은 장성균이라는 분네다장성균 선생님은 60대 초로의 학자로 천안에서 공무원 생활을 접은 뒤 지금은 선문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역시 우리의 것을 강의한단다.

 

김 관장이 모는 차는 탄금대교를 지나 가금면 방향으로 달린다남한강을 곁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달리는 도로의 정경이 그만이다이야기가 김 관장의 아들에게 미쳤다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재관리를 전공한다는 김 관장의 말소리가 뿌듯하다제 아버지를 잇겠다는 심사가 기특도 하고김 관장이 새삼 부럽다김 관장은 슬그머니 신립 장군으로 말머리를 돌려서는 탄금대, 8000병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더니 한 음식점 앞에 차를 세웠다음식점은 나루터가든(오리백숙집)으로 가금면 방향 우측에 있었다.

 

뒤로는 남한강이 흐르는 절경이요근방에서 꽤 유명짜한 집이라는 김 관장의 말대로 감칠맛 나는 음식에 낮술도 한잔하였다이제는 장 선생님의 말씀이 흥을 돋운다시인이기도 한 장 선생은 천안의 문협에 깊이 관계하고 있는 듯했다장 선생의 이야기는 흘러흘러 천안 광덕산에 위치한 운초 김부용 묘역까지 넘어갔다이야기를 들어 보니 장 선생님은 이 운초의 묘역 정리에 깊이 관여한듯하고이 운초 김부용은 필자가 곧 출간할 번역서 기인기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니 인연치고는 묘하다.

 

운초(雲楚김부용(金芙蓉, 1820~1869)은 가난한 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열 살 때 부친을 여의고 그 다음해 어머니마저 잃은 그니는 퇴기의 수양딸로 들어가 기생의 길을 걷는다이후 김이양(金履陽, 17551845)의 소실이 되었고김이양이 죽은 후 평생을 수절한다두 사람의 나이 차는 무려 65세이지만 그니는 김이양을 몹시 사랑한 듯하다.

 

운초가 김이양을 만난 것은 그녀의 나이는 겨우 19세였다이때 김이양의 나이는 무려 74당연히 김이양은 나이를 들어 거절하자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한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세상에는 30객 노인이 있는 반면, 80객 청춘도 있는 법입니다." 라고 뜻을 굽히지 않아 그니를 거두게 되었단다후일 김이양은 직분을 이용하여 부용을 기적에서 빼내 양인의 신분으로 만들었고정식 부실(副室)로 삼고 평생을 해로 하였다.

 

그니의 문장은 뛰어난데 내가 번역한 기인기사에 마침 시 한수가 있어 아래에 옮겨 본다이 시는 <부용상사곡>으로 김이양이 호조 판서가 되어 한양으로 부임하게 되어 이별하게 되자 쓴 시라고 한다.

 

 

 

 

 

헤어짐

 

보고픔

 

길은 멀고路遠

 

소식 더뎌信遲

 

생각은 임께 있으나念在彼

 

몸은 여기에 머무네身留玆

 

수건과 빗 눈물에 젖었건만巾櫛有淚

 

가까이 모실 날은 기약 없어紈扇無期

 

향기론 누각 종소리 울리는 밤香閣鍾鳴夜

 

연광정에서 달은 떠오릅니다練亭月上時

 

외론 베개 기대어 못 다한 꿈 놀라 깨倚孤枕驚殘夢

 

 가는 구름 바라보니 먼 이별에 슬픕니다望歸雲悵遠離

 

만날 날만을 근심으로 손꼽아 기다리니日待佳期愁屈指

 

새벽마다 정 밴 글 펴들고 턱 괴고 울지요晨開情札泣支頣

 

초췌한 얼굴로 거울 대하니 눈물만 흐르고顔色憔悴開鏡下淚

 

흐느끼는 노랫소리 기다리는 슬픔 머금었네歌聲嗚咽對人含悲

 

은장도로 애간장을 끊어 죽는 것 어렵지 않으나提銀刀斷弱膓非難事

 

비단신 끌며 먼 하늘 바라보니 의심만 자꾸 느네躡珠履送遠眸更多疑

 

봄 지나 가을도 안 오시니 낭군은 어찌 신의가 없나요春下來秋不來君何無信

 

아침저녁으로 저 멀리 바라보니 첩만 속는 게 아닌가요朝遠望夕遠望妾獨見欺

 

대동강이 평지가 된 뒤에나 말을 몰고 오시려 하시는지요浿江成平陸伋鞭馬其來否

 

장림이 바다로 변한 뒤 노를 저어 배를 타고 오시려는지요長林變大海初乘船欲渡之

 

전일 이별한 뒤 만날 길 막혔으니 세상일을 누가 알 수 있고前日別後日阻世情無人其測

 

어찌 그리 끊어져 놀람을 그리 품었는지 하늘의 뜻 누가 알리胡然斷愕然懷天意有誰能知

 

운우무산에 행적이 끊기었으니 선녀의 꿈을 어느 여인과 즐기시나요一片香雲楚臺夜仙女之夢在某

 

월하봉대에 피리 소리 끊기었으니 농옥의 정을 어느 여인과 나누십니까數聲淸蕭奏樓月弄玉之情屬誰

 

 생각 말자해도 절로 생각나 자주 몸을 모란봉에 의지하니 젊은 얼굴 아깝구나不思自思頻倚牡丹峯下惜紅顔色

 

잊고자 해도 잊기가 어려워 다시 부벽루 오르니 외려 검은머리 꾸밈만 가련해라欲望難忘更上浮碧樓猶憐綠鬢儀

 

외로이 잠자리에 누워 검은 머리 파뿌리 된들 삼생의 가약이 어찌 변할 수 있으며孤處深閨頭雖欲雪三生佳約焉有變

 

홀로 빈 방에 누워 눈물이 비 오듯 하나 백 년을 정한 마음이야 어찌 바꿀 수 있으랴獨宿空房淚下如雨百年定心自不移

 

낮잠을 깨어 창을 열고 화류소년을 맞아들이기도 하였지마는 모두 정 없는 나그네뿐罷晝眠開竹窓迎花柳少年摠是無情客

 

향내 나는 옷을 입고 옥 베게를 밀치고는 동년배와 가무를 해도 모두 가증한 사내뿐香衣推玉枕送歌舞同春莫非可憎兒

 

천리 밖 임을 기다리고 기다림이 이토록 심하니 군자의 박정은 어찌 이토록 심하십니까千里待人難待人難甚矣君子之薄情如是耶

 

끼니때마다 문을 나가 바라보고 바라보니 슬픈 천첩의 외로운 심정은 과연 어떠하겠는지요三時出門望出門望悲人賤妾之孤懷果何其

 

오직 너그럽고 인애하신 장부께서 결단을 내려 강을 건너와 머금은 정 촛불 아래 흔연히 대해 주세요惟願寬仁大丈夫決意渡江含情燭下欣相對

 

연약한 아녀자가 슬픔을 머금고 황천객이 되어 외로운 혼이 달 가운데서 길이 울지 않게 해 주세요人勿使軟弱兒女含淚歸泉哀魂月中泣長隨

 

 

 

 이러한 시를 '층시(層詩)'라고도 하고또 탑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보탑시(寶塔詩)'라고도 칭한다일설에 이 시는 평양 기생인 죽향(竹香)이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아직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기인기사≫ 저자인 송순기 선생은 이 시를 천하에 없는 절창이라고 하였다.

 

  

 

  

 

  

 

오리백숙을 먹으며 좌: 김상석 관장, 우: 필자와 장성균 교수님